FPX.milkyway——파리 구약성서

칼럼
2025.01.23

원문

 

 
 2014년, 장시성 난창시.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그랜드마스터’ 계급 휘장은 한 소년의 흥분된 얼굴에 이채를 돌게 했다. 비록 아직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최고 계급인 ‘챌린저’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마스터’ 반열에 도달했다는 것은 이미 그의 적수가 드물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어디에서나 자랑하기에 충분한 성과였다.
 
 그때의 소년은 뒤에서 자신이 게임하는 모습을 절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남동생이 이 빛줄기를 따라 그가 한 번도 발을 디뎌보지 못했던 아득한 곳에 발자취를 남기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10년 후.
 
 2024 LPL 스프링 정규 시즌이 막을 내리며, 누구의 집에 각종 명예의 꽃이 지게 될지에 대한 설왕설래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단, ‘신인왕’만큼은 분분한 입들 속에서 한 사람의 이름만을 가리켰다.
 
 ——FPX의 신예 정글, milkyway 차이쯔쥔(蔡子俊)
 
 LPL 역사상 유일하게 4회 연속 ‘이주의 신예’를 수상하고 스프링 정규 시즌에서 11번의 MVP를 가져간 선수, 리그 전체를 통틀어 보면 지배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시즌 초, 명단을 발표하면서 FPX는 여러 의미에서 만장일치로 ‘D급 팀’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탑과 미드라이너는 2, 3년 동안 대부분 평범했고, LPL에 갓 도착하여 심각한 언어 장벽이 존재했던 한국의 바텀 듀오, 그리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두 명의 정글은 확실히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들은 바로 TES, JDG 등의 강호를 꺾고 LPL의 거친 파도 속에서 정규 시즌 4위를 꿰찼던 이름들이다.
 
 스프링 시즌의 경기 전체를 살펴보면 FPX의 전술은 대부분 차이쯔쥔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그의 합류로 인해 팀은 역풍 속에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렸다고 할 수 있다.
 
 2019년에 월즈 우승을 차지한 이후, FPX 역시 많은 ‘챔피언 클럽’의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정상 이후에 펼쳐진 길 위에서의 비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색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이 소년은 은빛 번개와 같이 밤하늘을 가르며, 날을 거듭할수록 어둑해지는 봉황의 옛 그림자에 새로운 광채를 입혔다.
 
 그리고 그는 FPX가 면밀하게 준비한 ‘비밀병기’가 아니었다.
 
 최소한 처음에는.
 

 
 

1. 은하수가 강림하기 전날 밤

 
 
 FPX가 월즈에서 우승한 2019년, 차이쯔쥔은 이제 막 자신의 첫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집에 있던 컴퓨터의 소유권이 형에게 있었고, 형이 사용하지 않는 틈을 타 가끔 만질 수밖에 없던 탓에 자신만의 컴퓨터를 원했다.
 
 차이쯔쥔의 마지막이자 조금이나마 더 야심 찬 소원은 휴대폰이었다. 그는 방학을 이용해 지인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애 첫 ‘보상’을 받았고, 결국 부모님의 지원까지 더해서 처음으로 휴대폰을 바꿨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는 접시를 나를 필요가 없었다. 마침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부모님은 공립이든 사립이든 어떤 유형이든 그가 계속 공부에 매진할 학교만 찾을 수 있다면 컴퓨터 한 대를 마련해주시기로 한 것이다.
 
 향기로운 미끼 아래에는 물고기가 걸려 있어야 하고 큰 보상 아래에는 도전을 받아들이는 용자가 있기 마련이니, 차이쯔쥔은 다시 한번 비할 데 없는 행동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오후 내내 난창시의 거의 모든 학교에 전화를 걸었고, 마침내 한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등록금 납부를 신청하자 부모님은 약속대로 그를 데리고 컴퓨터를 사러 갔다.
 
 그리하야 개학하기 두 달 전의 방학 동안 차이쯔쥔은 단숨에 천룡인 서버에서 다이아몬드 1-2의 구간을 뚫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책가방을 챙겨 성실하게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고, 주말에만 집에 갈 수 있는 전기 전공 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서 다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소환사의 협곡으로 복귀한 그는 오래 비축한 내공을 풀 듯이 한 달 만에 1,000점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것은 그의 한 친구 덕분이기도 했는데, 천룡인 서버에서 만난 랭크 듀오가 있었다. 한번은 보이스를 연결했을 때 차이쯔쥔의 이어폰에서 한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친숙한 난창 사투리는 상대방이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두 사람은 겨우 6-7km의 거리였고, 이 랜선 유저들은 즉시 ‘오프’를 했다.
 
 당시의 차이쯔쥔은 정글을 가던 사람이었고 이 친구는 미드 카밀 장인이었는데, 뒤에 서서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재밌어하던 차이쯔쥔이 남몰래 장인의 비술을 훔치는 데 성공하였다. 결국 이 비술로 미드 카밀을 써서 1,000점의 관문을 뚫어냈다.
 

 
 바로 이때, 그는 프로팀 유스 훈련 코치가 보낸 러브콜을 받았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동의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차이쯔쥔은 오랜 시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공세를 펼쳤고, 결국 최후의 단언을 했다.
 
 “만약 제가 시험훈련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게임 안 할게요. 돌아가서 공부하고 두 분 뜻에 따르겠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와 같은 시도가 없던 건 아니다. 그는 일찍이 베이징에 가서 오일 실린더 부품 교체하는 걸 배웠는데, 배운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발을 다치게 되었다. 결국 취업은 중간도 채 가지 못하며 입원하게 되었고, 발로란 대륙이 더 안전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유스 훈련 시험의 합격선은 한국 서버 500점 이상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였어요. 제가 랭크에서 잘하지 못하면 다시 출근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필사적으로 돌렸어요. 하루에 20판, 30판씩 돌리는 게 기본이었어요.”
 
 차이쯔쥔은 미드 카밀로 600점을 돌파하며 자신만의 훈련실 자리를 만들 수 있었고, 그제야 LPL과 LDL의 구조에 대해서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LDL에서 뛸 기회를 얻으려면 최소한 한국 서버 1,000점이라는 조건이 필요한데, 그는 점수 상승의 병목기에 접어들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 걸음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반년 동안의 훈련 이후 당시 코치는 그에게 정글을 시도해 볼 것을 권유했는데, 본래 정글 유저 출신이기도 했고 이 포지션이 굉장히 재미있겠다고 생각하여 그는 의롭게 첫발을 내딛었다.
 
 “그때의 저는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매일 아침 7-8시까지 돌리다가 낮 12시에 일어났어요. 이걸 한 달 정도 반복하면서 한국 서버 1,000점을 찍었습니다.”
 
 정글 포지션에 복귀한 후 자신을 돌파하고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되며 2군에 진입했지만, LDL로 떨어진 XLB에 의해서 당장 경기를 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이쯔쥔은 “저는 한 시즌 동안은 그의 뒤에 있었어요.”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뒤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드디어 첫 출전 기회를 얻었는데, 다른 정글 선수와의 로테이션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한 세트도 이기지 못하고 여섯 세트를 모두 졌어요, 하하.”
 
 그 시즌의 RYL은 LDL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차이쯔쥔은 더는 출전하지 못했다.
 
 “성적이 좋지 않은 데다가 로테이션까지 겹치면서 당시 저의 멘탈리티는 별로였고 신체적으로도 문제가 있었어요. 긴 시간 동안 잠을 적게 자면서 기력이 없었고, 자고 싶어도 잠에 들 수가 없었죠. 이런 정신상태에서 날마다 회의까지 해야 하니까 전체적으로 너무 피곤했어요. 그때 어떤 생각도 했냐면, 아, 그냥 관두고 집에 갈까, 돌아가서 공부나 하는 게 효율적인 건 아닐까?”
 
 차이쯔쥔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그 뒤에 다시 든 생각은 제 동료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늘 경기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갈등도 있었지만,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겁다는 거였어요.”
 
 당시 팀 동료 중 한 명인 동갑내기 ‘탕위안(ID:Tangyuan)’은 시즌이 끝난 후 1군으로 올라가 LPL 선발 미드 자리를 굳혔고, 그는 LDL에서 안정적인 출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해 연말, 차이쯔쥔은 한국 서버 1위에 오르며 꿈에 그리던 선발 자리를 꿰찼다. 2023년, 팀과 함께 LDL 1차전 우승과 NEST컵 우승을 따냈는데, 이는 마치 맛있는 에피타이저처럼 더욱 큰 무대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1군의 정글이었던 ‘웨이(ID:Wei)’ 역시 어린 나이였는데, 전년도 MSI에서 FMVP를 따내는 등 차이쯔쥔은 자신이 웨이를 앞서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후보 선수라고 해도 어느 LPL 팀이든 갈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어요.”
 
 그는 몇몇 팀에 가서 훈련 시험을 치렀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진전은 없었다. 이적 기간이 하루하루 지나며 LPL에 오를 희망도 같이 희박해지던 찰나, LDL에서 1년 더 연마할 준비가 되어있던 그에게 FPX의 초청이 왔다.
 

 
 

2. ‘식스맨(第六人)’에서 ‘정글 코어(野核)’까지

 
 
 “사실 저는 제가 ‘식스맨’으로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마침 제격이라고 생각했는지 저를 불렀는데, 그때는 FPX에 가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차이쯔쥔은 당시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명확한 이해를 하고 있었다. 팀에서 그를 영입한 것은 리그의 ‘명단에는 6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라는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함일 수 있지, 모든 사람의 우위에 설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을 것이다.
 
 새 로스터 구성을 마친 후의 첫 대회는 데마시아컵이다. FPX의 선발 선수들이 2층에서 경기를 치르고 차이쯔쥔은 훈련조를 따라서 3층에서 방송으로 보고 있었는데, 팀이 한타에서 대패하는 순간 갑자기 호명되어 질문을 받았다.
 
 “너는 이 한타가 누구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제가 이걸 말해도 되는 건가요?——차이쯔쥔은 크게 놀랐다.
 
 “저는 감히 말할 수 없었죠. 말도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LPL에서 뛰어본 적도 없고 신인의 입장인 저에게 이 한타의 문제가 누구인지 묻다니요. 겨우 제가 할 수 있던 대답은 다 같이 쳐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합이 맞지 않아 그런 것 같다는 비교적 중립적인 말이었어요.”
 
 차이쯔쥔은 비록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복기 회의에 참여했다.
 
 “저에게 한 일원으로서 지든 이기든 모두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데마시아컵이 끝난 지 약 일주일 만에 마침내 첫 훈련 경기를 하게 됐다. Sin 감독은 하고 싶은 챔피언을 마음대로 고르라고 말했고, 그는 자신감 있게 다이애나를 뽑아 한 세트에서 15킬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것은 차이쯔쥔이 처한 상황의 별다른 질적 변화를 꾀어내진 못했다. 당시에는 유틸리티형 정글 챔피언 메타였고, 팀의 선발 정글 선수인 모얀(ID:Moyan)이 이를 잘 수행하는 반면에 그는 캐리형 정글 챔피언 중심으로 플레이했다.
 
 그리하여 차이쯔쥔은 일전에 ‘나는 휴대폰을 원한다’, ‘나는 컴퓨터를 원한다’라고 했던 것처럼 재차 그의 갈망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저는 훈련 경기를 좀 더 하고 싶어요.”
 
 로테이션과 경쟁은 많은 신인 선수가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이다. 상대와 경쟁하고 동료와 경쟁한다. 하나의 세트, 하나의 팀, 하나의 고정된 자리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과 연결고리는 있되 직접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승부를 장막 뒤에서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잔혹함에 가까운 경쟁의 세계이지만, 오히려 모얀은 차이쯔쥔이 팀에서 가장 먼저 친해진 사람이었다. 정글 포지션으로서의 게임에 대한 이해와 생각, 똑같이 외향적이고 입담 좋은 성격이 서로 간의 거리를 가깝게 좁혔을 것이다.
 
 “매일 대화해요. 그때는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뒤에 다 해결되었으니 껄끄러운 게 없죠. 그런데 지금은 팀을 떠나버려서 저랑 계속 얘기할 수 없는 게 아쉽기도 해요.”
 
 차이쯔쥔은 ‘투덜’댔다.
 
 “본질적으로 저는 모얀과 경쟁하는 관계지만 우리는 대화로 풀어갈 수 있고, 우리가 가진 것을 말하고, 우리의 능력에 따라서 경쟁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이렇게 하는 게 꽤 좋은 것 같고,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직접 쟁취하여 기회를 얻은 후의 적극적인 피드백 아래에서, 19점으로 시작한 훈련 경기는 서서히 50점대를 향해갔다.
 
 스프링 시즌의 첫 경기에서는 모얀이 선발로 출전했는데, 차이쯔쥔은 웃으며 그때를 회상했다.
 
 “첫 세트에서 모얀이 지고 나서 제가 들어갔는데, 저도 졌거든요. 처음 이 무대에 섰을 때 무대 아래에 앉은 사람이 너무 많았고, 확실히 ‘메인’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저 한 명의 후보 선수로서 경기하러 간 건데, 이런 환경에서 뛰어본 적도 본 적도 없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올라가서 싸워야 한다니 그냥 긴장됐어요. 약간이었지만 흥분하기도 했고요.”
 

 
 비록 출병의 시작이 좋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시 ‘후보 선수’로 보내지지 않고 드디어 선발 명단에 안착하며 기회를 얻었다.
 
 “우리가 내리 지게 되면서 ‘4대천왕(四大天王)’이라고 불렸거든요. 바텀의 한국 선수들이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능숙하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게임 중 하는 말들을 서로서로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지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FPX는 처음 4경기 중 1경기만 이겼고, 춘절 전 마지막 경기였던 EDG와의 승부 결과는 굉장히 중요했다.
 
 “만약 우리가 1-4로 시작한다면 남은 길을 걷는 게 굉장히 힘들어질 거고 플레이오프 진출도 쉽지는 않겠죠. 그래서 우리는 그때 ‘사명령(死命令)’을 내렸어요. 모든 사람이 120%의 노력과 역량을 쏟아부어서 이 경기에 진지하게 임해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고 했죠. 결국 우리는 2-1로 이겼는데, 승리는 정말 짜릿하고 기뻤어요. 그리고 돌아가서 춘절을 보내러 갔어요.”

※ 사명령(死命令):‘사명령’ 또는 ‘죽음의 명령’으로, 결과와 무관하게 반드시 이행해야만 하는 불복종할 수 없는 명령을 의미함.

 
 EDG전의 차이쯔쥔은 단장 ‘Damon’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전까지는 우리가 연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 약간의 피드백을 거쳤고, 그를 믿고 캐리형 챔피언을 쥐여주면서 캐리 한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역시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확실하게 팀을 이끌고 승리를 따냈습니다.”
 
 다만 당시 EDG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는데, FPX를 만나기 전에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FPX의 팬들에게는 진정제를 완전히 삼키게 할 수 있는 승리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FPX 웨이보에서의 댓글 1위는 ‘내년에는 몇 번 더 이겨보자’였고, 댓글을 남긴 팬들은 아마도 자신의 소원이 이렇게 완벽하게 이뤄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춘절을 쇠고 돌아온 FPX는 휴가의 여파 없이 연달아서 LNG와 LGD의 목을 베었고, 시즌 초의 막막함은 단숨에 해갈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경기인 2월 26일에는 진정한 격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FPX가 2년 동안 이기지 못한 5연승의 TES와 맞붙을 예정이었다. 경기 전날이 바텀의 ‘덕담(ID:deokdam)’ 선수 생일이었고, 그는 “이 경기에서 이기자!”라는 소원을 빌었다.
 
 1세트, FPX는 초반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첫 세 마리의 용을 모두 주머니에 넣었다. 킬도 골드도 앞섰지만 24분경, 미드에서의 한타 실수로 사망자가 생기게 되며 TES에게 바론을 넘겨주게 되었다. 이후 스노우볼이 굴러가며 결국 ‘티안(ID:Tian)’의 펜타킬로 경기가 끝나는 것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2세트, 차이쯔쥔은 1세트에서는 밴 당했던 신짜오를 잡고 MVP급 활약을 펼치며 팀의 만회를 이끌었다.
 
 3세트, TES는 용의 영혼을 먹은 후 바론을 공략했지만, FPX는 서포터를 보내서 그 움직임을 견제하는 동시에 나머지는 직접 중앙으로 돌격하였고, 실로 과감하고 놀라운 판단력과 행동력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TES는 매우 강한 팀이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이긴 것을 불가사의하게 여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전혀 아닙니다. 우리가 게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하기만 한다면 어떤 팀과 맞붙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1세트 때도 감독님이 우리의 한타 실수 한 번으로 바론을 넘겨줘서 졌을 뿐이지, 이길 수 있던 경기였다고 말했거든요. 그리고 이어진 2세트, 3세트에서도 우리가 이길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했어요.”
 
 TES의 연승을 저지한 FPX의 파죽지세는 계속됐다.
 
 3월 3일, 차이쯔쥔은 WBG전 1세트에서 자신의 간판인 ‘킨드레드’를 뽑았다. 결정적인 한타에서 핵심 딜러 2명을 잘라낸 차이쯔쥔은 넥서스를 깨러 갈 때 즐거워하며 ‘킨드레드의 왕(千珏王)’을 자칭했다.

2세트, 그는 재차 킨드레드를 사용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넥서스를 부쉈을 때 고함을 질렀다.
 
 “다시 말해봐! 내가 누구야?”
 
 “킨드레드의 왕!!!”
 
 동료들은 앞다퉈 감정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호응을 했고, ‘화신(化身)’을 맞이한 FPX는 차이쯔쥔의 ‘등극’에 환호했다.

※ 화신(化身):종교적 용어로, 인간 또는 동물 등 다양한 형태의 몸을 빌려 인간 세계에 강림한 신이나 영혼과 같은 초자연적 힘을 의미함.

 
 그렇게 LPL에 데뷔한 지 불과 41일째인 날, 차이쯔쥔은 WBG전 2세트에서 킨드레드로 100킬을 기록함으로써 리그 역사상 가장 빠르게 이 업적을 달성한 정글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와 함께 한국 서버를 등정했던 이 챔피언은 다시 한번 그를 승리로 이끌며 6연승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다음 경기에서 BLG를 만나 2-0으로 패배한 FPX는 곧바로 베이징으로 날아가서 JDG와의 원정 경기를 치러야 했는데, ‘마우스(ID:Mouse)’ 감독은 그 경기에서의 차이쯔쥔의 활약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도 우리가 이길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바로 그가 강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싸워서 가능했죠. 그때 사용했던 챔피언이 신짜오였는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동료들에게는 자신과 함께 싸우자고 했던 걸 기억해요. 갓 태어난 송아지는 범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죠.”
 
 차이쯔쥔은 승리의 공을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에게 돌렸다.
 
 “그 경기에서 이길 수 있던 관건은 코칭스태프가 우리를 믿고 바루스-럼블을 고를 수 있게 해주어서라고 생각해요. 그 버전에서 럼블 서포터는 기본적으로 우리만 플레이할 수 있었죠. 그리고 JDG의 바텀은 유독 강하기 때문에 바텀 중심으로 이어가질 테고, 어쨌든 저는 반드시 그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이런 식으로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승복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서 JDG전에서 이길 수 있던 것 같아요.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팀의 조화가 잘 되어있고, 소통과 호흡도 완벽했다는 거예요. 우리는 컨디션도 중요한데, 연승을 달리기 시작할 때 TES를 이기고 나니 JDG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고, JDG를 이기고 나니 이제는 BLG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차츰 마음가짐이 달라지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결국, 그냥 다 같이 노력하는 거예요. 앞에서 힘들었어도 상관없어요. 뒤에서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믿었어요. 모두 함께 이 목표를 위해서 싸웠고, 앞으로 향했죠.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잘 적응해졌고, 소통도 좋아졌고, 서서히 톱니바퀴가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연승을 달렸어요. 사실 그때 이런 걸 예상하진 못했는데, 다 같이 성과를 얻어낸 거죠.”
 

 
 

3. 좌충우돌 20

 
 
 정규 시즌 4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FPX의 첫 상대는 정규 시즌에서 이들에게 2-0으로 휩쓸렸던 NIP였다. 차이쯔쥔이 LPL 무대에 선 이래 첫 BO5이기도 했지만, 1-3으로 패배하며 플레이오픈 여정을 쏜살같이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때 ‘한 번 더 나아가는 게 어떨까?’라고 생각하던 차에 첫 라운드에서 바로 탈락했어요, 하하하. 좀 아쉬웠죠.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비록 한 바퀴 여행이긴 했지만, 저는 우리가 확실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성적에 대해서 만족하는 편이에요. 원래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결국 들어갔고, 많은 것들이 신기해요. 우리가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확실히 좀 도전적이고, 가혹하고, 상상할 수 없는 곳이죠.”
 
 차이쯔쥔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몇 라운드를 더 치러보고 싶었기 때문에 졌던 게 굉장히 달갑지는 않았죠. 하지만 사실 우리도 마지막에 웃으면서 졌어요. 많은 걸 배웠으니까요. 이것도 성장의 일환이죠.”
 

 
 서머 시즌에서 LPL은 경기 제도의 개편을 진행하였는데, 본래 17개의 팀이 단일 사이클로 경기했던 방식에서 조별로 팀을 나눈 후 조 내 더블 사이클로 경기를 치르는 조별리그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후 조별리그에서의 점수에 따라 등봉조(登峰组)와 열반조(涅槃组)로 나뉘고, 등봉조는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동시에 조별리그는 밴픽에서 ‘피어리스’를 적용하였는데, 이는 한 팀에서 사용한 챔피언을 다시 선택할 수 없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선수의 챔피언 풀과 팀이 비축한 전략에 있어서 큰 시련이었으나 많은 사람이 FPX만큼은 희소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스프링 시즌에 이들은 기상천외한 밴픽과 플레이로 유명했고, 바텀의 덕담은 무려 17개의 각기 다른 챔피언을 선보였으니까.
 
 조별리그가 끝난 후, A조에 속했던 FPX는 3승 3패 및 득실 -2의 성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하며 등봉조에 입성하였다. 하지만 다른 조에 속했다면 열반조에 들어갔을 이 점수는 결코 이상적인 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열반조에 갈까봐 걱정한 적은 없어요. 설령 열반조에 가더라도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우리 5명에게 달려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낮은 곳에서 출발해도 천천히 올라갈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죠. 기회는 적어질 수 있겠지만, 가장 아래에서부터 차츰 올라가는 건 우리의 경기력, 분위기, 계속해서 더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가고 싶다는 5명 모두의 결심이 점점 더 커지고 강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슬아슬하게 등봉조에 오른 FPX는 등봉조 내 경기에서 중간의 3경기만 이기고 연패로 시작하여 연패로 끝났지만, 가까스로 플레이오프 직행 자리를 차지하였다.
 
 “서머 시즌 성적은 제가 예상한 것과 큰 차이가 나진 않았어요. 애초에 저의 목표는 ‘우선 등봉조부터 들어가자’였고, 실제로 들어갔죠. 저는 그때 BO5를 여러 번 치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거의 최하위와 다름없는 7위로 진출했으니까 확실히 몇 번 더 치를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제 예상이랑 크게 다르진 않은 게 맞죠, 하하. 우리의 분위기는 항상 좋았어요. 이기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휴가를 내고 나가서 밥을 먹었고, 돌아와서는 평소처럼 회의하고 훈련했죠. 지면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그냥 “화이팅!”을 외치고선 다음에는 이기자고 했어요.”
 
 FPX는 서머 시즌 역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경기장에서의 활약은 스프링 시즌보다 더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스프링 시즌에 연승을 거뒀고 많은 강팀을 이긴 적이 있어요. 그때 우리 5명은 모두 자신감이 넘쳤고 같은 목표를 향하고 싶었죠. 서머 시즌에서는 단지 아직 그 지점에 닿지 못했을 뿐이에요. 저는 우리가 BO5를 한두 번만 이기면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고, 점점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팀 내 구설수, 선수 교체, 연패의 고군분투 속에서 차이쯔쥔은 스무 번째 생일을 보냈다. LPL 1학년 신입생으로서 한 해 동안 변화한 것과 여전히 변함없는 것은 그가 이어 걸어갈 길을 함께 인도했다.
 
 “LPL이 특히 어렵다고, LDL과의 격차가 크다고들 말하잖아요. 직접 느껴보니까... 음, 어려운 건 맞지만 제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는 언제나 절대적인 자신감을 지녔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성장은 우선 게임 내용이나 이해의 측면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팀에서 많은 일이 있기도 했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저도 교훈을 얻고 많이 성장했어요. 특히 인간관계나 이런 걸 대하는 전반적인 관점에서요.”
 
 8월 9일, 서머 정규 시즌의 각종 영예가 발표되었다. 차이쯔쥔은 서머 정규 시즌 최우수 신예로 선정되며, 2020년에 ‘정규 시즌 최우수 신예’를 만든 이래 유일하게 스프링-서머 시즌 연속으로 수상한 선수가 되었다.
 

 
 

4. 영웅주의(英雄主义), 불멸단혼(不灭团魂)

※ 영웅주의(英雄主义):중대한 의의를 지닌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나타나는 용감함, 강인함, 자기희생의 정신과 행위

※ 단혼(团魂):팀 전체가 공동의 신념하에 강력한 전투력과 응집력을 갖게 되는 것

 
 
 FPX의 코칭스태프의 눈에는 차이쯔쥔이 또래 선수보다 더 성숙하게 보인다. 눈에 띄는 경기력을 보여주는 젊은 선수는 적지 않지만, 신인으로서 팀을 짊어질 수 있는 적극성과 책임감을 가진 건 드문 일이다. 동시에 마우스 감독은 그의 가장 진면목은 ‘생각하는 것’에 있다고 평가했다.
 
 “감독의 입장으로 봤을 때, 그에게 어떠한 말을 던져주면 이걸 곰곰이 생각하기를 시작하는 선수에요. 저는 이게 프로 선수로서 정말 중요한 품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선수들은 감독이 말했을 때 바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또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말해도 절대 안 하기도 해요. 저는 감독과 선수 간의 가장 긍정적인 소통은 감독이 선수에게 무언가를 제안하면 선수가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한 후 함께 답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하고 있죠.”
 
 공식 발표된 흥미로운 데이터에 의하면, 차이쯔쥔은 스프링 시즌 동안 ‘CS를 가장 많이 먹은 정글러’이다. 팀의 자원과 전략이 주로 그에게 가중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FPX는 소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银河护卫队)’라는 별명도 얻었다.
 
 “정글 중심의 경기는 사실 정글이라는 포지션의 상한선을 시험하는 것과도 같아요. 감독님은 저를 믿어주셨고, 경영진분들도 저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셨죠. 그렇다면 저는 반드시 극한의 노력을 다해야만 합니다.”
 
 동료들의 역할 분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차이쯔쥔은 “탑은 희생 역할, 미드도 희생 역할, 바텀도 희생 역할이에요.”라며 자조의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의 희생을 당연시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기꺼이 캐리할 기회를 주는 동료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마우스 감독은 팀에서의 차이쯔쥔의 역할을 ‘조화제’라고 정의했다.
 
 “우리 모두의 제각기 다른 성격을 한데 뭉치게 해주는 느낌이에요.”
 
 경기장에서의 차이쯔쥔은 동료들을 이끌어 전선에 뛰어들고, 장외에서는 ‘공식대변인’으로 변신하여 경기 후 인터뷰에 조목조목 답변하였다. 그의 발언이 끝나면 바통이 터치되는데, 남은 4명의 동료는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마이크를 들고 초속으로 “+1”, “+2”, “+3”, “+4”라고 말하며 빠르게 인터뷰를 마쳤다. 유머감각이 넘칠 정도로 조화로운 광경이다.
 
 이 명단이 구성되었을 때, 한국인 바텀의 소통은 한때 팀이 직면한 중대한 과제였다. 후반에 성적이 오를 수 있던 이유도 확실히 바텀의 중국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에 있었다. 차이쯔쥔은 이제는 좀 더 세밀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길(ID:deokdam)과 라이프가 중국어를 배울 때, 저와 양제(ID:Care)는 그들에게 이상한 중국어 표현을 알려주곤 했거든요. 그들이 이걸 배우고 나서 쓰는 걸 들으면 진짜 웃겨요.”
 
 순간 차이쯔쥔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이거 말하면 안 돼요. 말할 수 없어요.”
 

 
 지금의 덕담은 가끔 중국어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대길이 갑자기 중국어 노래를 불렀는데, 제가 그만 못 참았어요.”
 
 차이쯔쥔의 폭로, 그에게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자 급격히 말투를 바꾸었다.
 
 “노래 잘 불러요. 노래에 아주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요.”
 
 FPX의 한 컨텐츠에서, 모든 팀원에게 차이쯔쥔에 대한 인상을 쓰게 한 적이 있다. 덕담의 답은 ‘시끄럽다’였는데, 차이쯔쥔 역시 자신에 대해서 “가장 큰 장점은 없는 것 같고, 단점은... 제가 말이 많다는 거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최소한 외국인 친구들에게 충분한 언어 환경을 제공한 셈이다.

 

 “평소에 수다를 많이 떨다가 같이 밥을 먹고,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까는 말도 몇 마디 해요. 다들 장난에 열려 있는 사람들이고 성격도 좋기 때문에 가끔 서로 놀려요.”

 차이쯔쥔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팀워크를 형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임에도 그는 맏형 같은 세심함을 보여줬다.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게임에는 거의 등장한 적 없지만 관객은 들으면 반응할 수 있는 이름들, 차이쯔쥔은 이들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한때의 ‘식스맨’으로서 현재의 그 어떤 ‘식스맨’도 결코 등한시한 적 없다.

 나중에 ‘주더장(ID:Zdz)’이 팀에 합류했을 때, 차이쯔쥔은 아직 서로가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의 시간은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주더장이 종종 게임에서 지나치게 감정을 꾹 억누르고, 불편한 게 있더라도 마음에 묻어두고, 스스로를 ‘압박에 견디는’ 모드로 만든다며 자신을 너무 억압하지 않고 적당히 표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전에 NGA 포럼에서는 24 FPX가 겉으로는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희한하게 잘 돌아가는 모습이 ‘X산코드(屎山代码)’와 같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FPX의 CEO ‘리춘(李淳)’이 댓글로 짤방을 달며 반응하기도 했다.

※ X산코드(屎山代码):유지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코드 더미를 형상적으로 묘사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혼란과 무질서를 암시함.


 경기 전, FPX가 원형으로 모여 외치는 함성이 “FPX, Fighting!”이 아닌 “FPX, Team!”인 것처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리더는 ‘독고다이’가 아니다. FPX의 공식 웨이보에 있는 “가장 극적인 영웅주의, 가장 빛나는 불멸단혼을 써 내려가야 한다”라는 메시지와 같이 실력과 팀워크의 완벽한 조화를 강조한다.

 

 

 2024 LPL 스프링 스플릿이 시작되자 17개의 팀의 각 포스터가 공개됐다. FPX의 포스터에는 차이쯔쥔이 2열 구석에 서서 다소 우스꽝스럽게 오른팔을 높이 들고 있다. 이후 이 사진은 MVP 정산 화면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자고로 봉황은 단번에 날아오르는 순간을 가장 잘 맞이할 수 있는 법이다.

 그가 기다리는 무대 역시 언제나 그를 기다려 왔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이채를 잃은 왕사(王师)와 선택받지 못했던 신인이 LPL 10주년의 말미에 만났다.

 2024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대회는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변혁을 맞이하였고, 시대의 격동 속에서 강림한 장수들이 눈부신 자태로 새로운 장의 복선을 내렸다.

 FPX의 컨텐츠 중 하나인 《FUN+SOUL》에서, 한 직원이 ‘올해 남극점(하위권)에 있는 것만 아니면 시즌 성공이야’라는 댓글이 있다고 알려주자 ‘샤오라오후(ID:Xiaolaohu)’는 웃으며 “팬분들이 우리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최소한 적도는 넘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등봉조와 열반조의 경계선을 적도로 정의한다면, 가는 길이 얼마나 굴곡졌든 그들은 확실히 약속을 지켜냈다.

 그리고 적도 북쪽의 더 먼 곳에는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의 옛 정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한 도시가 있다.

 2024 월드 챔피언십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고, 8강과 4강이 파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FPX는 월드 챔피언십 트로피를 들어 올린 바 있다.

 비록 막힘이 많고 아득히 먼 길처럼 보이지만, 조별리그에서 비틀거리며 2승을 거두고 진출이 아직 불투명할 때, 경기 후 인터뷰에서 차이쯔쥔은 월즈에 진출하겠다는 서머 시즌 목표를 선언했다.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날, 그는 “킨드레드가 또 너프됐어”, “킨드레드가 또 너프됐어”를 중얼거리며 걸어왔다. 몇 명은 월즈 버전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마우스 감독은 벌써부터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고 눈앞의 플레이오프부터 잘 치르자며 일갈했다.

 《LPL 신성이 빛날 때》라는 단편 영상 속에서 차이쯔쥔은 말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저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어떠한 시련과 좌절이 닥치더라도 항상 앞을 보게 해준다는 거예요.”

 그의 ID ‘milkyway’는 노래 ‘수성기(水星记)’의 가사 “은하수의 궤적을 따라가”에서 유래한 것이다. 형의 뒤에서, 친구의 뒤에서, 선발의 뒤에서 섰던 소년은 마침내 무대 앞으로 나와 LPL의 역사에 자신의 궤적을 통렬히 남겼다.

 “올해도 아니고 내년도 아닐 수 있겠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저만의 우승을 차지할 거예요.”

 구천(九天)에 이르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봉황은 날개를 펼치기 전 무수히 많은 깃털을 잃어도 봤고, 동이 트기 전 망망대해의 어둠도 견뎌냈다.

※ 구천(九天):고대 중국은 하늘이 9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는데 그중 가장 끝의 지점을 의미함.


 그 끝에 도달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세차게 흐르고 깊은 어둠의 장막을 지나서, 마침내 드넓은 바다에서 탄생한 것과 같은 은하수가 찬란하게 빛나리라.